솔직히 처음 배송받고 시향지만 뜯어봤을 땐 실망이 컸습니다. 동봉된 시향지를 거의 절이다시피 해서 보내신 덕에 이건 향수가 아니라 그냥 술인데... 싶었거든요. 추운날 배송오느라 차가운 상태였어서 더 그랬는지, 시향지 향만 계속 맡아보면서 너무 사과냄새만 한가득이었고요.그런데 그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손목등에 뿌렸는데 시향지에서만 느꼈던 신경질적인 사과향은 침착한 느낌으로 뒤로 빠지고 알싸한 압생트 주원료라는 향쑥 향기가 은근한 머스크를 타고 딱 나타나더라고요.머스크가 베이스인데도 향쑥이 더 핵심적인 노트라 그린, 우디, 애니멀릭 세 가지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릅니다.향이 살짝 날아가면 펜넬 노트가 제 체취에 얹히면서 압생트 특유의 뒷맛, 알싸한 감초 비슷한 그 느낌도 딱 납니다.제 향수들은 주로 시더우드 머스크 엠버 베르가못 파출리 바이올렛 백합 시벳 이런 류인데완전히 다른 향조라 컬렉션이 확 새로워졌네요.모든 향이 다 성별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이런 향수는 그중에서 유달리 성별을 지정할 수가 없는 향이에요.아빠 스킨 향은 싫지만 정장룩에 무리 없는 느낌을 원하는 사람,허브향은 좋지만 그렇다고 풀냄새 하면 떠올릴 순박한 이미지는 싫은 사람 들에게 딱 좋겠습니다.지속력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. 첫향은 빨리 빠지고 탑에서 남은 향쑥과 미들의 펜넬을 머스크가 살짝 받쳐줘요.(지속력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만큼 피부, 호흡기, 의류에 독하다는 건 다들 아실거고요.)전체적으로 비범하고 이질적인 인상을 추구한다면 가격 +1 이상의 가치는 하는 향수라고 생각합니다.